주장 CLM-006 · 1928년 4월 5일
1928년 4월 5일 영덕군 창수면에 동창학교가 개학했고, 이현설은 설립 발기인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자 교감 겸 재무였다.
● 확정
동시대 1차사료 또는 직접 원문으로 확인했다.
출옥 이후의 삶을 보여주는 첫 동시대 기록이다.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 몇 해 뒤 마을에
학교를 세우는 일에 이름을 올렸다.
지면이 적은 두 자리
조선일보 1928년 4월 27일자 4면
「盈德蒼水面 東昌學校設立」은 이현설의 이름을 두 번
적는다.
- 발기인 — 金潤德 · 金舜兆 · 林學烈 · 李鉉卨 네 사람의
발기로 수년 전부터 私立學校設立期成會가 조직되어
활동해 왔다고 적혀 있다.
- 교감 겸 재무 — 기사 말미의 직원 명단에서 林學烈과
나란히 敎監兼財務 자리에 있다.
이전 판에서 이 기록관은 이 항목을 “교감 겸 재무로 참여했다”로만 적고 있었다.
지면에는 그 앞의 발기 단계부터 이름이 있었다. 2026년 8월 21일 기사 원문을
다시 대조하며 바로잡았다.
학교의 규모
| 항목 | 기사 기재 |
|---|
| 착공·준공 | 1927년 9월경 착공 · 같은 해 11월경 준공 |
| 부지 | 운동장 포함 약 500평 |
| 교사 | 10여 칸 |
| 비용 | 약 1,500원 |
| 재원 | 인근 각 마을의 곡물 저축과 발기인·유지의 의연 |
| 개학 | 1928년 4월 5일 · 학생 약 50명 |
기본금 적립 없이, 인근 마을들이 해마다 곡물을 모아 유지하는 학교였다. 이 재정
구조가 3년 뒤의 폐쇄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 인과는
이 기사로 확정되지 않는다.
확정되지 않는 것
DOC-006 · 신문 · 동시대 신문
영덕군 창수면에 동창학교가 세워진 경위를 전한 동시대 보도. 김윤덕·김순조·임학렬·이현설 네 사람의 발기로 수년 전 사립학교설립기성회가 조직되었고, 1927년 9월경 착공해 11월경 준공했으며, 1928년 4월 5일 개학해 학생이 약 50명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직원 명단에 교장 김윤덕, 학감 김순조, 교감 겸 재무 임학렬·이현설, 교사 박시발 외 1인이 실려 있다. 이현설의 출옥 이후 활동을 확정하는 첫 동시대 기록이다.
- 생산
- 조선일보사 · 1928년 4월 27일
- 소장처
-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100 (디지털화 제공)
- 식별번호
- 1928-04-27 4면 · 기사 ID 274719280427e1047
- 링크
-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274719280427e1047&set_date=19280427&page_no=4
- 이용조건
- 지면 스캔의 재게시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 이미지를 옮겨 싣지 않고 발행일·면수·기사명·기사 ID와 원문 링크만 표시한다. 원 지면은 위 링크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 확정 ✕ 원문 비공개 자료 레코드 상세
충돌 기록
기록마다 다르게 적힌 값을 하나로 합치지 않고 그대로 남깁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
정하는 것보다, 어느 쪽이 무엇에 근거하는지를 밝히는 편이 오래갑니다.
연결
- 관련 인물
- 이현설
- 주제
- 교육활동 · 창수면 · 1928
- 관련 주장
-
- CLM-007 1935년 5월 이현설은 창수공립보통학교 설립위원회 위원으로 이름이 실렸고, 그 위원회는 기본금 3,700원을 한 달이 안 되어 완납했다. ● 확정
- CLM-008 창수 동창학원은 1930년 3월 25일 이후 늦어도 1931년 9월 7일 이전에 폐쇄되었다. ● 확정
- CLM-009 창수 동창학원(동창학교)과 이후의 창수공립보통학교 사이에 법적 계승관계가 있었다. ○ 미확정
- CLM-021 1930년 3월 25일 창수 동창학원의 졸업·수료식이 열렸고, 학원은 적어도 그날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 확정
- CLM-027 동창학원의 설립·폐쇄 연대에 관해 후대 지역 편찬물과 동시대 신문의 기록이 서로 어긋난다. ● 확정
- CLM-029 이현설은 학교를 세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창수면 협의원이 되었다. ♦ 가족 제공정보
- 조사일지
-
- 검토일
- 202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