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결론부터
그동안 『韓國獨立史』 511쪽 사진이라고 불러 온 그 초상은 이현설 선생이 아니다.
사진 아래 인쇄된 이름은 李鉉卨이 아니라 李鉉禹였다.
한때 우리는 그것을 발견이라고 불렀다. 웹사이트 기획서 초안의 첫 화면에는 “사진은 발견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이 들어가 있었다. 그 문장은 지금 이 사이트 어디에도 없다. 그 판단이 틀렸기 때문이다.
어떻게 시작됐나
경로 자체는 합리적이었다. 독립운동 인물을 정리한 편찬물에는 권두에 존영부가 실리는 경우가 많고, 그런 책에 이현설의 약전이 있다면 사진도 함께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해당 편찬물의 지면을 확인하는 일이 조사 목록에 올랐다.
그리고 511쪽에 흑백 상반신 사진과 함께 이름 캡션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캡션은
李鉉卨로 읽혔다고 전해 들었다. 생몰과 지역, 사건이 맞는 사람의 이름이 사진 아래에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짚어둘 것이 있다. 그때 우리 중 누구도 그 지면을 직접 보지 않았다.
가족에게는 그날이 특별했다. 백 년 가까이 없던 얼굴이 돌아온 줄 알았다.
직접 가서 보기로 했다
문자로 오간 정보만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2026년 8월 16일, 가족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직접 갔다. 관내 열람 PC에서 해당 자료를 띄우고, 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오후 2시 55분에 문제의 인물사진을 확대해서 한 장, 오후 3시에 그 면 전체를 한 장.
출처
- 원자료
- 『韓國獨立史』 편저자 김승학 편저 판본 판본 미확정 — 독립문화사 1965 초판, 1970 상·하 증보판, 1983 독립동지회 합본 증보판 등 3종이 알려져 있으나 이 촬영본이 어느 판본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재확인 필요. 간행 간행연도 미확정 (판본에 따라 다름)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면수·식별 인쇄 면수 미확정 — 촬영본에서 인쇄된 쪽번호를 확인하지 못했다. 재확인 필요. 소장처 링크 https://www.nl.go.kr/ 남은 확인 인물사진 아래의 손글씨 숫자(李鉉禹 항목은 697)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정하지 못했다. 약전 수록 면수를 적어둔 것으로 보이나 검증 전이다.
- 촬영·파생본
- 『韓國獨立史』 존영부 촬영본 — 李鉉禹 인물사진 면 (국립중앙도서관 열람화면) 촬영자 이현설 선생 후손 가족 (촬영) 촬영일 2026년 8월 16일 — 촬영일. 원자료의 간행연도가 아니다. 식별번호 촬영 원파일 IMG_1253 2.HEIC · IMG_1255 2.HEIC 소장처 링크 https://www.nl.go.kr/
- 이용조건
- 웹 게시 게시 가능 — 촬영자인 유족의 명시적 요청에 따라 게시한다. 원자료 지면은 잘못된 인물 비정을 정정하기 위한 연구·비평 목적에서 판독에 필요한 최소 범위만 인용한다. 권리자의 문의가 있으면 즉시 검토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이용조건 촬영본 — 이현설 기록관 / 원자료 지면 — 권리관계 미확정, 연구·비평·정정 목적의 필요한 범위 발췌 개인정보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기재는 없다. 인쇄된 인물명과 사진뿐이다.
자료 레코드 DOC-022 상세 보기
화면에 뜬 캡션을 확대해서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글자는 卨이 아니었다.
李 鉉 禹.
卨과 禹는 인쇄 상태가 좋지 않은 옛 지면에서, 특히 작게 축소된 존영부 캡션에서
혼동되기 쉽다. 성과 항렬자가 같고 끝 글자만 다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자획을
확대해 놓고 보면 두 글자는 분명히 다르다.
즉 이 사진은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사진이었다.
면 전체를 찍어둔 이유
확대본만으로는 이 캡션이 어떤 형식의 지면에 실려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면 전체도 함께 촬영했다.
출처
- 원자료
- 『韓國獨立史』 편저자 김승학 편저 판본 판본 미확정 — 독립문화사 1965 초판, 1970 상·하 증보판, 1983 독립동지회 합본 증보판 등 3종이 알려져 있으나 이 촬영본이 어느 판본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재확인 필요. 간행 간행연도 미확정 (판본에 따라 다름)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면수·식별 인쇄 면수 미확정 — 촬영본에서 인쇄된 쪽번호를 확인하지 못했다. 재확인 필요. 소장처 링크 https://www.nl.go.kr/ 남은 확인 인물사진 아래의 손글씨 숫자(李鉉禹 항목은 697)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정하지 못했다. 약전 수록 면수를 적어둔 것으로 보이나 검증 전이다.
- 촬영·파생본
- 『韓國獨立史』 존영부 촬영본 — 李鉉禹 인물사진 면 (국립중앙도서관 열람화면) 촬영자 이현설 선생 후손 가족 (촬영) 촬영일 2026년 8월 16일 — 촬영일. 원자료의 간행연도가 아니다. 식별번호 촬영 원파일 IMG_1253 2.HEIC · IMG_1255 2.HEIC 소장처 링크 https://www.nl.go.kr/
- 이용조건
- 웹 게시 게시 가능 — 촬영자인 유족의 명시적 요청에 따라 게시한다. 원자료 지면은 잘못된 인물 비정을 정정하기 위한 연구·비평 목적에서 판독에 필요한 최소 범위만 인용한다. 권리자의 문의가 있으면 즉시 검토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이용조건 촬영본 — 이현설 기록관 / 원자료 지면 — 권리관계 미확정, 연구·비평·정정 목적의 필요한 범위 발췌 개인정보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기재는 없다. 인쇄된 인물명과 사진뿐이다.
자료 레코드 DOC-022 상세 보기
이 한 장이 두 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이 부분은 인물사진을 모아 실은 존영부이고
성씨별로 묶여 있다는 것. 둘째, 손글씨 숫자가 李鉉禹에만 붙은 것이 아니라
인물마다 붙어 있다는 것이다. 667, 674, 680, 695, 699, 700, 701, 702, 703, 704, 706…
약전이 실린 면수를 누군가 대조해 적어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697도 이 사진이
실린 면수가 아니라 이현우 선생의 약전이 실린 면수일 것이다. 다만 이것은 아직
추정이고, 확인하지 않았다.
확정하지 못한 채로 남겨두는 것
솔직히 적어둔다. 이 두 장의 사진으로 확정한 것은 캡션이 李鉉禹라는 사실 하나뿐이다.
- 판본을 모른다. 『韓國獨立史』는 독립문화사 1965 초판, 1970 상·하 증보판, 1983 독립동지회 합본 증보판 등 3종이 알려져 있다. 우리가 본 화면이 어느 판본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 인쇄 면수를 모른다. 촬영본에 쪽번호가 담기지 않았다. 그동안 이 사진을
511쪽이라고 불러 왔지만, 그 숫자는 처음 기관 회신에서 나온 것이고 그 뒤로 호칭처럼 굳어졌을 뿐이다. 이 두 사진이 511쪽이라는 근거는 없다. - 손글씨 697의 의미를 모른다. 위에 적은 추정은 추정일 뿐이다.
- 두 사진이 같은 면인지도 확정하지 않았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적는 편이, 그럴듯한 숫자를 확정처럼 적는 것보다 낫다. 우리가 이 조사에서 배운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다.
두 번째 가설도 기각됐다
오독이 확인된 뒤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본 판본에는 없었을 뿐, 다른 판본에는 실려 있을 것이다.”
이 가설도 기각되었다. 문제는 판본이 아니라 캡션이었기 때문이다. 없는 사진을 찾아 판본을 뒤지는 일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향한 조사다.
판본 차이 가설은 오독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결론만 유지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대목을 특히 분명하게 남긴다.
이현우 선생의 얼굴에 대하여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우리가 찾던 얼굴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 사진을 “다른 사람”이라는 한마디로 넘기고 싶지는 않다. 그 초상은 독립운동 인물을 모아 엮은 책의 존영부에 실려 있다.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한 사람이, 이름 석 자와 함께 거기 남아 있다.
이현우 李鉉禹 선생.
이 기록관이 이 분에 대해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생몰년도, 출신 지역도, 어떤 일을 하셨는지도 우리는 모른다. 이현설 선생을 조사하다 마주친 이름이기 때문에, 따로 조사하지 않았고 근거 없는 전기를 지어 붙이지도 않았다. → 이현우 인물 기록
다만 이 이름을 지우지 않고 남긴다. 이름을 잘못 읽어 남의 얼굴을 우리 조상이라고 불렀던 것이 처음의 잘못이었다면, 우리 조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얼굴을 서둘러 치워버리는 것도 방향만 다른 같은 종류의 무례일 것이다.
한 사람의 얼굴을 찾다가 다른 한 사람의 얼굴을 만났다. 그 사실을 그대로 적어 둔다.
무엇을 바꿨나
- 2026년 8월 16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촬영한 두 장을 DOC-022 자료 레코드로 등록했다. 원본 HEIC 파일은 공개하지 않고 기록관이 보관하며, 파일명과 SHA-256만 공개한다. 웹에는 회전·축소한 파생본만 올렸다.
- 이현우 李鉉禹 인물 기록을 만들었다. 확인된 것은 캡션의 이름과 이현설이 아니라는 사실뿐이며, 그 이상은 적지 않았다.
- CLM-015를 배제로 전환하고 영구 주소를 유지했다. 삭제하지 않은 이유는, 잘못된 정보를 옮겨 적은 기록이 어딘가 남아 있을 수 있고 그것을 따라온 사람이 정정된 결론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 CLM-024 판본 차이 가설도 배제로 기록했다.
- 511쪽 회신 자료는 공개 자료 목록에서 빼고 정정기록으로 옮겼다. 개인 서신이므로 원문·서명·연락처는 어떤 형태로도 공개하지 않는다.
- 이현설 선생의 사진에 관한 유효 서술을 CLM-014 하나로 정리했다.
- DOC-017에 알려진 판본 3종을 기재하고, 우리가 열람한 판본이 확정되지 않았음을 명시했다.
왜 이 실패를 공개하는가
기록관이 신뢰를 얻는 방법은 틀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틀렸을 때 무엇을 어떻게 바로잡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 오독을 조용히 지웠다면, 이 사이트의 다른 모든 문장도 같은 방식으로 관리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확정이라는 라벨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실용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 오독은 우리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 성과 항렬자가 같은 이름은 인명사전과 색인 곳곳에서 서로 섞인다. 같은 함정에 빠질 다음 사람에게, 이 페이지가 먼저 도착하기를 바란다.
지금 서 있는 자리
- 이현설 선생의 사진: 미발견
- 살아 있는 조사 경로: 감옥 개인 수형기록, 편찬물 권두 존영부의 정확한 한자 캡션 확인, 1968년 포상철의 개인 공적조서, 지역·학교 단체사진, 문중과 가족 소장 사진
- 배제된 경로: 그동안
511쪽이라 불러온 존영부 사진(캡션李鉉禹확인), 판본 차이 가설, 1968년 유가족석 화면 - 새로 생긴 숙제: 열람한 판본과 인쇄 면수 확정, 손글씨 숫자의 의미 확인,
李鉉卨캡션이 존영부 어딘가에 실제로 있는지 확인
얼굴은 아직 없다. 그러나 제1화에서 얻은 세 문장은 그대로 남아 있고, 잘못 얻은 얼굴 하나보다 정확한 문장 세 개가 오래 간다고 우리는 믿는다.
사진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보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