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CLM-027

동창학원의 설립·폐쇄 연대에 관해 후대 지역 편찬물과 동시대 신문의 기록이 서로 어긋난다.

확정

동시대 1차사료 또는 직접 원문으로 확인했다.

이 항목은 사건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기록의 상태에 관한 주장이다. 확정되는 것은 “두 계열의 기록이 서로 어긋난다”는 사실 자체다.

어긋나는 지점

자료등급설립·개학폐쇄·폐지
DOC-006 조선일보 1928-04-27확정1928년 4월 5일 개학—
DOC-013 조선일보 1930-03-28확정—1930년 3월 25일 운영 중
DOC-014 조선일보 1931-09-07확정—1931년 9월 7일 이전 폐쇄
DOC-030 『창수면지』 484쪽공식 후대기록1935년1938년
DOC-027 영덕군지 웹 게재본공식 후대기록1935년1938년

이 기록관이 취한 처리

동시대 지면을 연표로 삼고, 후대 서술은 후대 서술로 표시해 남긴다.

동시대 신문은 사건이 일어나던 그해에 인쇄된 문서다. 후대 편찬물은 70년 안팎이 지난 뒤 정리된 서술이며, 지역 편찬물에는 구술과 기억이 섞여 들어온다. 두 계열이 어긋날 때 이 기록관은 앞의 것을 연표에 올린다.

그렇다고 뒤의 것을 지우지 않는다. 편찬물이 무엇을 적고 있는지도 하나의 기록이고, 그 서술을 읽고 온 사람이 이 사이트에서 그 문장을 찾지 못하면 정정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어긋났는지 — 여기서부터는 전부 가설이다

아래는 확인된 설명이 아니라 앞으로 검증할 가설이다.

  1. 두 학교가 겹쳐 읽혔을 가능성 — 1935년은 창수공립보통학교의 설립 절차가 진행된 해다. 별개의 두 학교와 두 연도가 후대 서술에서 하나로 합쳐졌을 수 있다.
  2. 폐쇄 뒤 재개원이 있었을 가능성 — 1931년에 닫힌 학원이 뒤에 다시 열렸고 후대 서술이 그 시점을 설립으로 적었을 수 있다.
  3. 어느 한쪽 연도가 단순히 부정확할 가능성.

세 가지 모두 인가·폐쇄에 관한 행정문서로 확인해야 한다. 그 전까지 이 항목은 가설의 목록으로 남는다.

이 항목이 말하지 않는 것

  • 후대 편찬물이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어긋난다고 적는다.
  • 두 계열의 학원이 같은 학원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소재(창수)와 초대 원장·교장의 이름(金潤德)이 겹치므로 같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이 대목에 이현설의 이름은 어느 편찬물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현설의 1928년 관여는 동시대 신문이 따로 확정한다.

근거 자료

자료 목록 →
  • DOC-006 · 신문 · 동시대 신문

    조선일보 1928년 4월 27일자 4면 — 「盈德蒼水面 東昌學校設立 / 校舍도建築」

    영덕군 창수면에 동창학교가 세워진 경위를 전한 동시대 보도. 김윤덕·김순조·임학렬·이현설 네 사람의 발기로 수년 전 사립학교설립기성회가 조직되었고, 1927년 9월경 착공해 11월경 준공했으며, 1928년 4월 5일 개학해 학생이 약 50명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직원 명단에 교장 김윤덕, 학감 김순조, 교감 겸 재무 임학렬·이현설, 교사 박시발 외 1인이 실려 있다. 이현설의 출옥 이후 활동을 확정하는 첫 동시대 기록이다.

    생산
    조선일보사 · 1928년 4월 27일
    소장처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100 (디지털화 제공)
    식별번호
    1928-04-27 4면 · 기사 ID 274719280427e1047
    링크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274719280427e1047&set_date=19280427&page_no=4
    이용조건
    지면 스캔의 재게시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 이미지를 옮겨 싣지 않고 발행일·면수·기사명·기사 ID와 원문 링크만 표시한다. 원 지면은 위 링크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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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C-013 · 신문 · 동시대 신문

    조선일보 1930년 3월 28일자 3면 — 「各學校卒業」 중 蒼水東昌學院 항목

    여러 학교의 졸업·수료 소식을 한데 묶어 실은 기사. 그 가운데 <span class="mono">蒼水東昌學院 同二十五日</span> 항목이 있어, 1930년 3월 25일에 창수 동창학원의 졸업·수료 행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1928년에 개학한 학원이 적어도 이 날짜까지 학생을 배출할 만큼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확정한다.

    생산
    조선일보사 · 1930년 3월 28일
    소장처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100 (디지털화 제공)
    식별번호
    1930-03-28 3면 · 기사 ID 1930032800239203007
    링크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1930032800239203007&set_date=19300328&page_no=3
    이용조건
    지면 스캔의 재게시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 이미지를 옮겨 싣지 않고 발행일·면수·기사명·기사 ID와 원문 링크만 표시한다. 원 지면은 위 링크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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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C-014 · 신문 · 동시대 신문

    조선일보 1931년 9월 7일자 4면 — 「五個所公普校에 私立學校가六個 / 盈德敎育狀况一瞥」

    영덕군의 교육 형편을 훑은 기사. 인가 문제와 재정난으로 문을 닫은 사립학원을 열거하면서 <span class="mono">蒼水朿昌學院</span>을 함께 적었다. 지면의 <span class="mono">朿昌</span>은 <span class="mono">東昌</span>의 지면 표기 이체 또는 판독 오류로 판단한다. 1930년 3월 25일 행사 이후 늦어도 1931년 9월 7일 이전에 학원이 폐쇄되었음을 보여주지만, 정확한 폐쇄일은 이 기사로 확정되지 않는다.

    생산
    조선일보사 · 1931년 9월 7일
    소장처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100 (디지털화 제공)
    식별번호
    1931-09-07 4면 · 기사 ID 1931090700239204010
    링크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1931090700239204010&set_date=19310907&page_no=4
    이용조건
    지면 스캔의 재게시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 이미지를 옮겨 싣지 않고 발행일·면수·기사명·기사 ID와 원문 링크만 표시한다. 원 지면은 위 링크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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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C-027 · 지역지 · 후대 공식기록

    『영덕군지』 제6편 제1장 교육 — 「(5) 경흥학원·명륜원·동창학원」 (영덕군청 웹 게재본)

    영덕군청이 공식 누리집에 게재한 『영덕군지』 교육 장의 한 대목. 창수면 창수리의 일명 점구(店邱) 동창학원이 1935년 마을 유지들의 협찬으로 설립되어 초대 원장 김윤덕이 취임했고 1938년 폐지되었다고 서술한다. 동시대 원문이 아니라 후대 편찬 서술이며, 『창수면지』 484쪽과 같은 연대를 적어 동시대 신문의 1928년 개학·늦어도 1931년 폐쇄와 어긋난다. 이 대목에 이현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생산
    영덕군지 편찬위원회 · 영덕군청 · 연도 미상
    소장처
    영덕군청
    식별번호
    제6편 제1장 교육 · 제1절 교육의 변천 · (5) 경흥학원·명륜원·동창학원
    링크
    https://www.yd.go.kr/?p=71901
    이용조건
    본문 전재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본문을 옮겨 싣지 않고 서지사항, 원문 링크, 핵심 사실 요약과 최소 범위의 어구만 표시한다.

    공식 후대기록 원문 비공개 자료 레코드 상세

  • DOC-030 · 지역지 · 후대 지역기록

    『창수면지』(蒼水面誌) 제5장 교육과 종교 484쪽 — 동창학원 서술

    창수면의 교육을 정리한 장의 한 대목으로, 점두들 동창학원이 1935년에 설립되어 1938년에 폐쇄되었다고 적었다. 사건보다 70여 년 뒤에 편찬된 후대 서술이며, 동시대 신문이 전하는 1928년 개학·1930년 운영·늦어도 1931년 폐쇄와 연대가 어긋난다. 이 대목에 이현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생산
    영덕문화원 (집필 이재곤 · 기획·편집 임진동) · 2009년 5월
    소장처
    영덕문화원 · 한국문화원연합회 지역N문화 (원문 제공)
    식별번호
    제5장 교육과 종교 · 484쪽
    링크
    https://www.nculture.org/lib/libraryDetail.do?contentId=78749
    이용조건
    본문 전재 허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이트는 지면 이미지와 전문을 옮겨 싣지 않고 서지사항, 원문 링크, 핵심 사실 요약과 최소 범위의 어구만 표시한다. 원문은 위 링크에서 직접 열람할 수 있다.

    공식 후대기록 원문 비공개 자료 레코드 상세

충돌 기록

기록마다 다르게 적힌 값을 하나로 합치지 않고 그대로 남깁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 정하는 것보다, 어느 쪽이 무엇에 근거하는지를 밝히는 편이 오래갑니다.

연결

주제
교육활동 · 기록충돌 · 창수면
관련 주장
  • CLM-006 1928년 4월 5일 영덕군 창수면에 동창학교가 개학했고, 이현설은 설립 발기인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자 교감 겸 재무였다. 확정
  • CLM-008 창수 동창학원은 1930년 3월 25일 이후 늦어도 1931년 9월 7일 이전에 폐쇄되었다. 확정
  • CLM-009 창수 동창학원(동창학교)과 이후의 창수공립보통학교 사이에 법적 계승관계가 있었다. 미확정
  • CLM-021 1930년 3월 25일 창수 동창학원의 졸업·수료식이 열렸고, 학원은 적어도 그날까지 운영되고 있었다. 확정
  • CLM-028 창수공립보통학교는 1935년 9월 25일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10월 8일 개교했다. 공식 후대기록
  • CLM-029 이현설은 학교를 세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창수면 협의원이 되었다. 가족 제공정보
조사일지
검토일
2026-08-21